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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자와 가타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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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라자와 가타타카는 데라자와 히로타카의 차남으로, 형 데라자와 타다하루가 요절하여 적자가 되었고, 아버지의 사망으로 1633년 가라쓰 번의 2대 번주가 되었다. 선대로부터 이어진 아마쿠사 지방의 키리시탄 탄압을 가혹하게 하여 1637년 시마바라의 난이 발발했고, 진압에 나섰다. 난이 종결된 후 실정의 책임을 물어 아마쿠사 영지 4만 석을 몰수당하고 출사도 허용되지 않아 정신적 동요를 겪다 1647년 자해했다. 후사가 없어 데라자와 가문은 단절되었고, 가라쓰 번은 개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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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자와 가타타카
기본 정보
씨명데라자와 씨
시대에도 시대 전기
출생게이초 14년 (1609년)
사망쇼호 4년 11월 18일 (1647년12월 14일)
개명하루마루 (유명), 다다타카, 가타타카
계명고호인덴뱌쿠시쓰소우다이코지
묘소사가현가라쓰시 사이지마치의 곤쇼지
고야산 조후쿠인
관위종5위하효고노카미
막부에도 막부
주군도쿠가와 이에미쓰
히젠가라쓰번 번주
씨족데라자와 씨
부모데라자와 히로타카, 쓰마키 사다노리 딸
형제다다하루
가타타카
도카와 마사야스 정실
규쇼인
미즈타니 가쓰타카 계실
배우자오카베 나가모리
소마 도시타네
자녀교쿠다이인
관직
직책가라쓰번 번주 (데라자와 가)
대수2
임기1633년 ~ 1647년
전임자데라자와 히로타카
후임자막부령(오쿠보 다다모토)

2. 생애

데라자와 히로타카의 차남으로, 겐나 8년(1622년)에 형 타다하루가 요절했기 때문에 적자가 되었다. 간에이 10년(1633년)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유산을 상속하여 2대 번주가 되었다.

선대로부터 이어진 아마쿠사 지방의 키리시탄 탄압을 가혹하게 하여 시마바라의 난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난이 종결된 후, 책임을 추궁받아 아마쿠사 영지 4만 석을 몰수당했다. 마쓰쿠라 가문에 비하면 가벼운 처분이었지만, 출사가 허용되지 않아 체면을 잃고, 쇼호 4년(1647년) 11월 18일에 에도의 가이젠지에서 자해했다. 향년 39세.

후사가 없어 데라자와 가문은 단절되었고, 가라쓰 번은 개역되었다.

2. 1. 시마바라의 난

데라자와 히로타카의 차남으로, 겐나 8년(1622년)에 형인 타다하루가 요절했기 때문에 적자가 되었다. 간에이 10년(1633년)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유산을 상속하여 2대 번주가 되었다.

선대로부터 이어진 아마쿠사 지방의 키리시탄 탄압을 가혹하게 한 것으로 인해, 간에이 14년(1637년)에 시마바라의 난이 발발했다. 에도에 참근하던 중이던 가타타카는 곧바로 귀국하여 막부군과 함께 난의 진압에 나섰다.

2. 2. 몰락과 죽음

데라자와 히로타카의 차남이다. 겐나 8년(1622년)에 형인 다다하루가 요절했기 때문에 적자가 되었고, 간에이 10년(1633년)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유산을 상속하여 2대 번주가 되었다.

선대로부터 이어진 아마쿠사 지방의 기독교 탄압을 가혹하게 한 것으로 인해, 간에이 14년(1637년)에 시마바라의 난이 발발했다. 에도에 참근하던 중이던 가타타카는 곧바로 귀국하여 막부군과 함께 난의 진압에 나섰다.

난이 종결된 후에는 실정의 책임을 추궁받았다. 같은 난의 당사자이며 당주가 참수된 마쓰쿠라 가문에 비하면 가벼운 처분으로, 아마쿠사 영지 4만 석을 몰수당하는 것에 그쳤지만, 출사도 허용되지 않아 체면을 잃고 치욕스러운 날들을 보내며 쇼호 4년(1647년) 11월 18일에 에도의 가이젠지에서 자해했다. 자해의 원인으로는 앞선 아마쿠사 영지 몰수에 따른 정신적 동요가 생각된다. 향년 39세였다.

가라쓰 성에 보관되어 있는 마쓰우라 풍토기에는 "간에이 14정축년 아마쿠사 잇키 일어나 4만 석 몰수 쇼호 4년 11월 18일 에도에서 난신으로 졸거 무자녀 후사를 잇다"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데라자와 가문은 단절되었고, 가라쓰 번은 개역되었다.

3. 가계

4. 관련 작품

데라자와 가타타카를 소재로 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 드라마 협객・반추인 조헤이(1995년, TV 도쿄쇼치쿠) - 배우: 나카하라 다케오

4. 1. 드라마


  • 협객・반추인 조헤이(1995년, TV 도쿄쇼치쿠) - 배우: 나카하라 다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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